며칠 전 뉴스를 보다가 흥미로운 경험을 했다. 이재명 정부의 주택담보대출 규제에 대한 뉴스였는데, 채널을 돌려가며 보니 마치 다른 나라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다.
A방송: “서민들의 내집마련 꿈을 지키는 현명한 정책”
B방송: “열심히 일한 청년들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나쁜 정책”
같은 정책, 같은 사실을 두고도 이렇게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다니. 순간 떠오른 책이 있었다. 오래 전에 읽었던 장하준의 ‘사다리 걷어차기’. 과연 ‘사다리 걷어차기’를 이렇게 사용해도 되는 것일까?
교양이 필요한 이유: 현실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
교양이란 무엇일까? 단순히 많은 책을 읽거나 고상한 지식을 아는 것이 아니다. 교양은 세상을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는 기본적인 소양이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 교양이 중요한 이유는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진실을 구별해내는 능력은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매일 쏟아지는 뉴스와 정보들 속에서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주장인지,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는 목소리인지 파악하는 능력. 이것이 바로 현대인에게 필요한 교양의 핵심 중 하나다. 장하준 교수의 ‘사다리 걷어차기‘는 이런 교양의 필요성을 경제학적 관점에서 명쾌하게 보여준다.
교양에는 지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고차원적인 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지식이야 중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대화에서 능숙하게 활용할 수 있다면 충분하다(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성인이 되어서 다시 공부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대신 교양은 삶의 방향이나 태도와 관련된다.
‘사다리 걷어차기’: 선진국의 이중 잣대를 파헤치다
- ‘사다리 걷어차기’는 독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리스트가 처음 사용한 개념이다. 자신이 높은 곳에 올라간 후 다른 사람이 따라 올라오지 못하도록 사다리를 걷어차는 행위를 뜻한다.
세계적인 경제학자인 장하준 교수(케임브리지 대학)는 이 책에서 놀라운 사실을 폭로한다. 현재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이 발전 과정에서 사용했던 정책들을 개발도상국들에게는 금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은 산업혁명 시기 철저한 보호무역으로 자국 산업을 육성했지만, 지금은 개발도상국에 자유무역을 강요한다. 미국은 19세기 내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관세율을 유지하며 성장했지만, 현재는 개발도상국의 관세를 문제 삼는다.
이 책의 진짜 가치는 기존의 통념을 뒤집는 데 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자유시장 경제론’이 사실은 선진국의 이익을 위한 논리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관점을 통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다르게 볼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미디어 리터러시: 21세기 필수 교양
교양을 쌓는 데 필요한 여러 능력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능력은 리터러시다. 문해력 대신 리터러시를 사용한 것은 리터러시의 개념이 점점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리터러시는 정보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총체적인 능력을 의미하며, 현대 사회에서는 디지털 리터러시, 데이터 리터러시, 미디어 리터러시로 확장되고 있다.
“**리터러시란 ‘생각과 삶의 방식’**입니다. 문명적 삶의 ‘8할’은 읽고 쓰고 생각하고 대화하고 협력하고 판단하는 방식, 즉 리터러시가 결정합니다. 좋은 삶을 사는 사람들은 좋은 리터러시를 갖추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좋은 미래는 좋은 리터러시를 갖춘 사람들이 절대 다수가 될 때, 함께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읽는 인간 리터러시를 경험하라>(조병영, 2021)
그중 미디어 리터러시는 특히 중요하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미디어가 전달하는 정보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하는 능력이다. 미디어 리터러시가 없는 사람들은 수많은 가짜 뉴스에서 사실과 주장을 구별하지 못한다. 앵커나 기자의 주장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는 단순히 읽고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이 정보는 누가 만들었는가?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졌는가?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는가? 어떤 관점이 생략되어 있는가? 사실과 주장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는가?
이제 실제 사례로 미디어 리터러시를 연습해보자. 최근 이재명 정부의 주택담보대출 규제 정책을 둘러싼 언론 보도가 좋은 예시다.

실전 사례: 주택담보대출 규제 뉴스 분석
팩트와 주장 구분하기
먼저 팩트를 확인해보자. 정부가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 것은 사실이다. 구체적으로는 1주택 이상 주택담보대출을 금지하고, 대출 한도를 6억 원으로 제한하며, 대출 만기를 30년 이내로 단축했다.
하지만 이 팩트에 대한 해석과 평가는 언론사마다 극명하게 갈린다.
긍정적 보도의 논리
진보적이거나 중립적 성향의 언론에서는 이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이광수 명지대 겸임교수는 “역대 최고의 부동산 대책”이라고 평가했다. 이들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집값 급등을 막는 현명한 정책이다. 무분별한 부채 증가를 막아 경제 안정에 기여한다. 투기 수요를 차단해 건전한 주택시장을 조성한다. 그러면 집 없는 서민들에게 더 유리한 내집마련 기회가 제공될 것이다.
부정적 보도의 논리
반면 보수적이거나 경제 전문지에서는 정반대의 논조를 보인다. 서울경제는 “6억 대출 한도에 고소득 흙수저 강남 입성 막혔다”는 제목으로 보도했고, 조선일보는 “기습적으로 대출 조여… 계약금 날리고 이사 못 갈 판”이라고 전했다.
이들의 논리는 이렇다. 열심히 일한 청년들의 기회를 박탈하는 정책이다. 고소득 흙수저들의 내집마련 꿈을 짓밟는 포퓰리즘이다. 경제 활력을 떨어뜨리는 반시장적 정책이다. 건설업계와 금융업계에 타격을 주는 졸속 정책이다.
주장의 오류 검증하기
부정적 보도에서 자주 등장하는 “고소득 흙수저” 표현을 검토해보자. 6억 원을 대출받으려면 연봉 1억 5천만 원 이상은 되어야 하고, 기존 부채가 없어야 한다. 이런 조건을 만족하는 사람을 과연 “흙수저”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미디어 리터러시가 없는 사람들은 자신이 그 조건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하고 ‘나쁜 정책’이라는 데 한 표를 던진다. 그게 결국 자신의 이익을 해치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미디어오늘의 분석에 따르면, 이번 대출 규제의 영향을 받는 이들은 “대개 연 소득 1억 원 이상, 대출액 상위 10%”에 해당한다. 서민, 신혼부부, 청년 가운데 여기 해당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부정적 보도는 “일부 고소득 계층의 피해 사례를 일반화”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언론 소유 구조 분석: 누가 어떤 목소리를 내는가
부정적 보도를 하는 언론들의 소유 구조를 보면 흥미로운 패턴이 보인다. 한국 언론은 건설 및 금융 자본에 의해 상당 부분 지배되고 있다. 전국 228개의 지역 언론사 중 18.4%에 달하는 42개 언론사가 건설 관련 자본에 의해 소유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건설사들이 언론사를 소유하는 목적은 명확하다. 부정적인 여론을 막고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서다. 부동산 정책이나 비리 등에 대한 비판 보도를 막고, 기업 이미지 제고에 활용하려는 것이다. 실제로 기자들 사이에서는 건설 자본 관련 비판 보도를 “보도의 성역”으로 여기며 조심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한다.
이런 구조적 문제 때문에 건설사가 대주주인 언론사나 대기업 계열의 언론사, 부동산 개발업에 이해관계가 있는 언론사들이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반대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비즈니스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기 때문이다.
반면 이런 이해관계가 상대적으로 적은 언론들은 정책의 긍정적 측면에 주목한다. 서민들의 내집마련과 경제 안정이라는 공익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다.
진짜 사다리를 걷어차는 것은 누구인가
이 상황을 장하준의 ‘사다리 걷어차기’ 관점에서 보면 어떨까? 현재 부동산을 여러 채 소유하고 있는 기존 부동산 부자들과 건설업계는 이미 부동산 시장의 혜택을 충분히 누렸다. 그들은 과거 부동산 가격 상승의 수혜자였고, 대출을 통한 레버리지 효과도 마음껏 활용했다.
그들이 정부의 대출 규제로 청년들의 내집 마련 사다리를 걷어찬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나라의 경제가 위험하든 말든 집값만 올리는 정책이 과연 정당한가? 어떤 나라의 청년들도 끝없이 오르는 집값을 감당할 수 없다. 결국 그런 사회는 갈등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바로 우리가 당면한 현실이다.
청년들의 내집 마련 사다리를 걷어찬 것은 끝없이 집값을 올리는 정책을 폈던 정치인과 건설사들 그리고 그걸 정당화한 언론들과 그에 편승한 투기 세력들이 아닌가?
그런 건설업계 등 부동산 기득권층이 자기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다시 뭉쳤다. 정부의 정책을 가로막기 위해 “서민들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행위”라고 주장(사실이 아니라 주장이다)한다. 미디어 리터러시가 없는 사람들을 이용해서 여론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정부의 대출 규제는 오히려 집값을 안정시켜서 서민들이 적은 빚으로도 집을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는 정책이다. 진짜 사다리를 놓아주는 정책을 “사다리 걷어차기”라고 왜곡하여 보도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다리 걷어차기다.
결론: 교양인이라면 미디어 리터러시를 키워라
- *’사다리 걷어차기’**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교훈은 이것이다. 기존의 통념과 지배적 담론을 의심해보라. 누가, 왜, 어떤 목적으로 특정한 주장을 하는지 파악할 수 있어야 진정한 교양인이다. 그리고 이런 능력의 핵심이 바로 미디어 리터러시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미디어 리터러시가 더욱 중요하다. 진정한 교양인이 되고 싶다면, 단순히 많은 책을 읽는 것을 넘어서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누군가의 주장을 무조건 받아들이지 말고, 항상 질문하라. “과연 누가 사다리를 걷어차고 있는가?”
그래야만 우리는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다. 이것이 바로 21세기 교양인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



